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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와 기독교의 차이, 15부 중 6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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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부에서 칭하이 무상사님은 종교의 핵심과 믿음을 초월한 살아계신 깨달은 스승의 필요성을 설명하십니다.

덕과 힘을 갖춘 큰 스승은‍ 우리를 자기 세계로‍ 데려가고 새로운 천국을‍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 예수님의 말과 같죠, 『내 아버지의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내 아버지의 집에는‍ 방들이 많다』

자, 이 모든 『방』은‍ 어디에서 올까요? 그 방이 텅 빈 채로 죄의 짐을 진 우리를 기다리기만 할 리는 없죠. 말하건대,‍ 이 세상에는 기독교 신자, 불교 신자,‍ 이슬람교 신자, 힌두교 신자‍ 등이 있습니다. 세계 인구의 4분의 1은‍ 기독교인일 겁니다. 적어도 5분의 1은 되죠? 만약 이 모든 기독교인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았다면, 왜 세계 인구의‍ 5분의 1이 줄어들지 않을까요? 천국에 가지 못했거든요.

아버지의 방, 그 저택은‍ 여전히 비어 있습니다. 그것들이 이미 있다면 텅 비어 있겠죠; 아무도 올라가지 않거든요. 또한 수많은 사람이 불교를 믿고 있습니다-정말 많은 사람이요. 불교는 매우 대중적이죠. 지금 우리 세상은 6분의 1, 5분의 1, 10분의 1도 줄지 않았어요. 오히려 인구가 늘어났죠. 그리고 많은 사람이‍ 힌두교를 믿습니다-적어도 모든 인도인은‍ 해탈해야 하지 않겠어요? 하지만 그렇게 보이지 않죠. 인도 인구는 계속 증가해요. 그러면 종교가 우리에게‍ 무슨 소용이 있나요? 이제는 여러분도 알 겁니다.

종교는 좋은 겁니다. 나는 종교가 좋지 않다고 말한 적이 없어요. 모든 종교는 사람들을‍ 비참함과 고통에서 구해내어 천국으로 인도하기 위한 겁니다. 그러나 세상의 인구는 계속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는 종교의 본질을‍ 잃어버렸기 때문이죠; 깨달은 스승들이‍ 부재하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살아계셨을 때,‍ 그분은 세상의 빛이셨습니다.‍ 불교의 정수이며‍ 전부이자 총체이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이 입적하신 후,‍ 우리를 『불교도』라 해요. 바로 그 부처님의‍ 제자라는 뜻이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아계셨을 때, 그분은 기독교의 전부였습니다. 그분은 그리스도이자, 절대자, 당시의 유일한 분,‍ 지고의 스승이셨습니다. 그래서 돌아가신 후나‍ 살아계셨을 때,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걸 나타내고자 『기독교도』라 불렀어요. 그리스도의 추종자라는‍ 뜻입니다. 『불교도』가 부처님의‍ 추종자인 것처럼 말이죠. 그것은 이 스승들이 살아계실 때의 일입니다. 또는 노자가 살아계셨을 때,‍ 사람들은 그분을 따르며 자신을 도교도라 불렀죠. 도교도‍ 공자께서 살아계셨을 때,‍ 사람들이 따랐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스승이 없는‍ 나머지 사람들과‍ 자신을 구별 지었죠. 그들은 스스로를 『유학자』라 불렀습니다. 이는 공자와 부처님, (주) 그리스도의 제자들‍ 사이에서 자신들에게‍ 스승이 있음을 나타내기 위한 것입니다. 다른 이들은 달랐어요. 다른 이들은 어떤 교리를 따르기는 했지만 진정한 깨달은 스승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공자와‍ 부처님, (주) 그리스도, 예언자 무함마드(그분께‍ 평화가 있기를) 등의‍ 추종자라는 것을 구별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많은 종교가 있는 겁니다. 그리고 부처님과‍ (주) 그리스도, 예언자 무함마드‍(그분께 평화가 있기를), 노자, 공자 등과 같은‍ 깨달은 위대한 스승은‍ 그 시대의 빛입니다. 그들은 어떤 수단이나‍ 운명, 혹은 제자들의‍ 선포 같은 것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부처님과‍ (주) 그리스도, 공자, 노자께서 역사에‍ 이름을 남기셨고‍ 역사에 남게 되었습니다. 크게 깨달은 스승은‍ 많지만, 뭐랄까, 그분들은 유명하지 않아요. 아마 그 가르침이‍ 너무 적었거나, 아무도‍ 책으로 내지 않았을 겁니다. 아무도 그분들의 신성한‍ 메시지를 알리지 않았기에‍ 유명해지지 못했죠. 그래서 (주) 그리스도 이후와‍ 부처님 이후, 노자 이후, 공자 이후, 예언자 무함마드(그분께 평화가 있기를) 이후에 온‍ 어떤 스승도 그분들의‍ 그늘에 서야만 했습니다. 그분들은 세계적으로‍ 너무 유명해졌고, 수십억 사람의 마음에 자리 잡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후에 온 모든‍ 스승은 자기 가르침을 입증하기 위해 자신의 현재 가르침이 과거의 가르침과 일치함을 증명하기 위해‍ 그분들의 말씀을 인용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매우 어려워요, 정말 어려워요. 그래서 (주)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역시, 이런 어려움을 겪으셨어요. 항상 끊임없이 과거 스승을‍ 인용해야 했습니다. 모세가 그렇게 말했고 누구누구가 이러이러한‍ 말을 했다고요. 자신과 자기 가르침을‍ 변호해야 했습니다. 그분은 말씀했죠, 『보라! 나는 파괴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왔다』

단지 오래된 옛 가르침을 설명하러 오셨던 거지‍ 옛 가르침을 파괴하러‍ 오신 게 아닙니다. 하지만 당시 사람들은‍ 그분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했고, 그분이 누군지도 몰랐으며, 이단이라거나 부정적인 세력의 화신, 혹은 다른 걸로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은 참 묘합니다. 거룩한 것을 가르치는 분이‍ 어떻게 부정적이겠어요? 『살생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네 이웃을 사랑하라‍ 네 원수를 용서하라』 등을 가르치는 사람이‍ 어떻게 『사탄』이나‍ 『악마의 일꾼』일 수‍ 있겠어요? 이런 길을 가르치는 분이‍ 어찌 부정적이겠어요? 설령 능력이 없다고 해도, 신의 권능이 전혀 없어도 이런 길을 가르치신다면‍ 악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때때로 어떤 시대나‍ 역사를 파헤쳐보면,‍ 대중의 무지가 상상을 초월하는 걸 보고‍ 매우 놀라곤 합니다. 부처님도 마찬가지였죠. 부처님이 살아 계셨을 때‍ 무얼 가르치셨죠? 똑같아요: 『살생하지 말라‍. 거짓말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다른 사람을 해치지 말라.‍ 이웃을 사랑하라‍. 큰 자비를 베풀어라』 등등.‍ 하지만 부처님 시대에는‍ 많은 사람이 그를 억압하고‍ 반대하며, 이단자라거나 외도라고 말했습니다. 시대를 막론한 이 같은 대중의 무지를 어떻게 이해할까요? 그래서 사람들을 천국으로‍ 다시 데려가는 일이 그토록 어려워요. 너무 많은 선입견과, 너무 많은 편견, 너무 많은 무지한 관점, 옛것과 낡은 개념에 대한‍ 지나친 집착에다가 정작 이런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경전을 이해하면 좋겠지만, 그들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것이 깨달은 사람과 무지한 사람의 차이를 만듭니다.

깨달은 사람은 누구든‍ 경전의 육화입니다. 어떤 경전이든‍ 철저하고 올바르게‍ 이해합니다. 깨닫지 못한 사람은‍ 얼마나 오래 경전을‍ 읽었든, 얼마나 많이 암기했든 상관없이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거기에 갇힐 뿐입니다. 관념과 그 관념에 대한 잘못된 믿음 속에‍ 갇혀버리고 맙니다. 종교 경전이 좋지 않다는 게 아닙니다. 불교가 좋지 않은 게 아니죠. 기독교가 좋지 않다는 것도 아닙니다. 어떤 종교든 훌륭합니다. 단지 사람들이 종교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 문장의 진정한 의미조차‍ 알지 못할뿐더러, 그 문장이 내포하는 바나,‍ 문장 이면에 숨겨진 의미를 아예‍ 알지 못하는 겁니다.

가령, (주) 예수님은 말씀하길,‍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 나는 세상의 빛이요, 길이다』‍ 그래서 거기에 갇힙니다. 기독교인은 말합니다, 『예수님은 유일한 빛이고;‍ 언제나 빛이다. 세상의 빛이며‍ 길이다』‍ 아닙니다,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이라 하셨죠. 그분이 떠나신 후에는, 위로자를 보내실 텐데,‍ 이는 다른 예언자들이‍ 온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대부분 기독교인은 거기에 갇혀서 오직 (주) 예수님만을 믿죠. 주 예수님을 믿는 것은 좋지만, 정말로 그분의 뜻을 이해하고 진정 연결되려면,‍ (주) 예수님의 수준까지‍ 올라가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를 신의 나라로‍ 데려가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 있고, (주) 예수님은‍ 언제나 저기 계셔서 서로 연결되지 않는다면,‍ 아무도 도우실 수 없습니다. (주) 예수님은 우리와 연결되지 않으면,‍ 전혀 도와주실 수 없습니다. (주) 예수께서 살아계실 때‍ 쉽게 소통할 수 있었기에, 『그분께 우리 이름을‍ 등록할 수』 있었습니다. 『(주) 예수님, 하나님을‍ 믿습니다. 제발, 본향에 데려가‍ 주세요』하면 그분은 아셨죠. 그분은 약속하셨습니다, 『좋다, 나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 집으로 갈 것이다』 하지만 그분이 세상을 떠나면서 그 자장은 우리에게서 거두어집니다.

이제 그분은 다른 세계로‍ 가셔서, 더 나은 인종의, 어쩌면 더 훌륭하고 진보된 제자들을 가르치며 사실 겁니다. 진실로 (주) 예수님을 믿고‍ 뵙고 싶다면, 갈 수 있지만,‍ 그분이 머무시는 곳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그것은 오직 인내와‍ 명상, 기도, 그리고 살아계신 스승의 은총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스승은 육신이 있으니 접촉하기가 더 쉽기 때문입니다. 육신 안에 계신 분이며 영 안에도 계십니다. 하지만 영 안에 계신 분은‍ 육신에 계실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살아계신 스승이‍ 영 안에 계신 스승보다 더 중요합니다, 아니라면 스승을 볼 수 없고,‍ 그 수준까지 못 올라가죠.

사진:‍ 『불가사의한 분을 사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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